여선교회전국연합회
"진리를 따르는 자는 빛이 오나니 이는 그 행위가 하나님 안에서 행한 것임을 나타내려 함이라(요한복음 3: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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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년 선교부 세미나-신경림 교수 강의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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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KWSCS 작성일 10-01-24 14:27 조회 1,157 댓글 0
 
첨부 Asian_Women-KMW.doc (66.0K) 386회 다운로드 DATE : 2010-02-01 12:05:19
들어가는 글
장 순호 선교사님은 선교사 교육만큼 중요한 것은 선교사를 후원하는 사람들의 교육이라고 한다.  선교사는 어떻든 간데 훈련을 받고 일하기 시작하지만, 선교사들에게 영향력을 많이 끼치는 후원 단체나 후원교회들은 전혀 교육을 받지 않아 종종 선교에 도움이 되지 않는 것들을 요구하거나, 바람직하지 않은 영향을 끼칠 때가 있다는 것이다.  그런 점에서 선교에 대해 배우고자 귀한 시간을 낸 여러분들에게 감사와 존경을 표한다. 
내가 선교에 대한 책임을 맡게 된 것은 웨슬리 신학대학원이 세계화에 중점을 두기로 결정했기 때문이다.  이것은 미국의 신학교로서는 매우 획기적이고 독특한, 반면에 위험 부담이 많은 결단인데, 일단 일을 시작하고 보니 이 일이 신학교와 교회, 그리고 세계에 큰 변화와 혁신을 가져 올 수 있는 중요한 일임을 깨닫게 되었다.

미래 선교의 관건
처음 일을 맡은 후 세계에 있는 감독들, 특히 선교지로 알려진 곳의 감독들에게 무엇이 가장 필요하냐고 물었더니 목회자 양성이라고 대답하였다.  아프리카의 많은 나라에서는 목회자 한 사람이 평균 15내지 20교회를 맡고 있다면서, 기존 목회자들이 과로로 쓰러지고, 새로운 목회자들이 양성되지 못해 안타깝다고 하였다. 
필립 젠킨스가 쓴 “차기 기독교 왕국”이라는 책에 보면 2025년까지의 기독교인 증가율이 아프리카는 2배, 라틴 아메리카는 1.3배, 아시아는 1.5배가 될거라고 한다.  그런데 목회자 분포를 보면 캐톨릭의 경우, 유럽과 미국에 있는 세계의 35퍼센트 정도의 교인들이 세계의 68퍼센트 정도의 신부들을 가지고 있다는 것이다.  이 말은 우리의 열심과 희생으로 선교가 잘 이루어지고 있다는 흐뭇한 소식인 동시에, 그 새로운 교인들이 자격을 갖춘 목회자 없이 방치되고 있다는 우울한 소식이기도 하다.   
우리 미국인 교수 한 사람이 중국을 방문한 적이 있는데, 우연히 길거리에서 “예배당”이라고 새겨진 글이 희미하게 남아있는 건물을 발견하고 반가워서 들어가 보았더니, 그곳은 공장으로 쓰여지고 있었고, 그곳이 교회였다는 것을 아는 사람조차 없었다고 하는 이야기를 전한 적이 있다.  대부분의 선교지에서는 언제 선교사들이 축출되고, 교회 건물들이 정부에 압수될지 모른다.  우리가 현지인 목회자를 길러 놓으면 선교사들이 떠나게 되어도, 건물이 없어도 목회가 계속되겠지만, 교회 건물들만 열심히 짓고 현지인 목회자를 양성해 놓지 않으면 선교의 모든 노력이 물거품이 될 수도 있다.  또 현지인들로 하여금 궁극적으로는 독립하게 하는 것이 우리의 사명이므로 현지인 목회자 양성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그래서 우리 웨슬리 신학대학원에서는 우선 각 대륙마다 적어도 하나 이상의 교육 프로그램을 만들어 현지인 목회자 양성을 돕고자 한다.  대부분의 선교지는 기독교 역사가 매우 짧기 때문에 스스로 신학교를 만들기가 불가능하고, 그동안 세워진 신학교들도 자체 교수들이 전혀 없는 상황이라 매우 낮은 수준의 교육을 하고 있거나, 아니면 외부 교수들에 전적으로 의존하고 있는 상황이다.  러시아, 카작스탄, 카메룬, 유카탄에 프로그램을 시작하였으며, 이번에 아시아 쪽을 조사하러 왔다가 한국에 들렀다.

선교와 세계 평화
세계에서는 기독교만 아니라 이슬람도 급격히 성장하고 있어 결국은 이슬람과 기독교의 대결이 불가피하게 보인다. 
지난 9/11 사태, 또 이에 따른 미국과 이락과의 전쟁에서도 보듯이 폭력은 폭력을 낳을 뿐 해결책이 아니다.  세계 평화는 전쟁으로도 안 되고, 외교에는 한계가 있어(누구나 자국의 이익이 궁극적 목표이기 때문에 서로 이용하려하고 이기려고 하므로), 궁극적으로 종교인들의 책임이다.  종교간의 대립이 있는 한 세계 평화는 결코 이루어질 수 없을 것 같다.   
세계 평화가 있으면 좋겠지만, 없어도 우리에게는 큰 지장이 없다고 생각하는 사람들도 있다.  그러나 미국의 수도와 뉴욕의 쌍둥이 빌딩이 그렇게 공격 당할 줄 누가 상상이나 했을까?  또 한국의 젊은이가 이락 사람들에게 잡혀 그렇게 잔인하게 살해 될 줄 누가 알았을까?  9/11 테러에 죽은 사람들 모두 다 테러리스트들에게 직접적인 해를 가한 사람 없다.  지금 이락 전쟁에서 죽어가는 그 수많은 사람들도 직접적인 원한은 커녕, 평생에 한 번도 만난 적도 없는 사람들이 죽이고, 죽고 있다. 우리와 같이 선한 사람들이고, 아니 우리보다 더 선한 사람들도 떼죽음을 당하고 있다.  이 말은 이 세상에 어느 누구도 테러나 전쟁으로부터 안전하지 못하다는 말이다.

가인과 아벨, 그리고 우리
인류의 처음 폭력은 첫 가족에서 시작되었다.  형인 가인이 동생, 아벨을 죽였으니, 형은 살인자가 되었고, 동생은 죄도 없이 죽임을 당했고, 그러니 그 부모는 어떻게 잘 살 수 있었겠는가?  모두 불행하게 되었다.  가인은 벌 받아야 마땅하겠지만, 아벨은 의로운 사람이었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죽임을 당했다.  우리 모두 가인같이 되어서는 안 되겠지만, 아벨같이 되고 싶지도 않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되나? 
가인이 친동생을 죽이기 까지 많이 괴로워했을 것이다.  그런데 그동안 아벨은 무엇을 했나?  성경에 보면 형의 아픔과 괴로움에 대해 아벨이 한 일은 아무 것도 기록되어 있지 않다.  만일 아벨이 형의 아픔과 괴로움을 이해하고, 그 고통을 같이 나누며 그것을 덜어주려 했었다면 어땠을까?  아벨이 형의 문제를 자기의 문제로 생각하고 어떻게든 해결하려고 함께 노력했다면 그래도 가인이 아벨을 죽였을까?  가인이 살인을 저지른 후 하나님에게 자기의 목숨을 살려 달라고 간구했을 때 하나님은 그 뻔뻔스러운 간구를 들어 주셨다.  그렇다면 만일 아벨이 자기 형을 위해, 그의 불행에 대해 하나님께 간구하였다면 하나님께서 안 들어 주셨을까?  아벨의 문제는 무엇을 잘못한 것이 아니라, 자기가 형을 위해 할 수 있는 일을 안 한 것이다.  하나님 앞에는 의로웠지만, 그가 형의 괴로움과 아픔을 위해 아무 것도 하지 않았을 때, 의로운 아벨이었지만 죽임을 당하고 말았고, 그로 인해 그 가족 전체가 파멸하고 말았다.  아벨에게 부족했던 것은 하나님 앞에 의로운 것에 그치고, 주위의 아픔과 불행을 자기의 것으로 여기고 적극적으로 도우려 하지 않았던 것이다.  평화로운 세상을 위해서는 가인만으로도, 아벨만으로도 안 되고, 그들을 넘어서는 “우리”가 있어야 한다.
가인이 하나님께 살려 달라고 간구했을 때 하나님은 가인을 죽음으로주터 보호해 주셨다.  여기서 우리는 가인을 향한 하나님의 사랑과 은혜를 볼 수 있다.  하나님은 의로운 사람뿐만 아니라 악인도, 죄인도 사랑하신다.  그러므로 우리의 책임은 의인도, 악인도 모두 더불어 살 수 있는 세상을 만들어야 한다.  그래야만 남도 살고, 나도 살지, 내가 아무리 노력해도, 아무리 선해도 혼자 잘 살 수가 없는 것이다.  그러므로 선교는 하나님의 명령이요 그리스도인의 의무일 뿐만 아니라, 우리가, 우리 자식이 잘 살 수 있게 하기 위해서라도 반드시 해야만 하는 것이다. 

월남
아직 선교의 자유가 없기 때문에 선교사들이 계속 거주지를 옮기며 숨어서 활동하고 있다.  표면적으로 공인된 교회들도, 공인된 목회자들도 있지만(호치민시에 45 교회, 20목사), 대부분의 교회와 목회자들은 등록하기를 두려워한다.  일단 알려지면 언제든지 추방하거나 체포할 수 있기 때문이다.
신학교: 비밀리에 장소를 옮겨 다니며 교육하고 있고, 현재 재학생이 130명이지 보안상 한번에 20명씩만 교육하고 있어 교수 수급 문제가 더욱 절실하다. 1/3 정도가 여학생이었는데, 여자 신학생으로서의 어려움에 대해 물었더니 식구들을 먹여 살리는 것이 우선이라, 일을 하면서 공부하기가 어렵다고 대답했다. 
그곳 학장과 선교사들은 여성 목회자가 정부의 감시도 더 잘 피하고, 오랫동안 고통 당하던 사람들이라 돌봄의 목회가 필요하기 때문에 여성 목회자들이 더 많이 양성되었으면 좋겠다고 한다.
캄보디아
공산국가지만 종교의 자유가 허용되어 3백만 인구중 십만이 교인이다.  경제의 90퍼센트는 외국에 의존하고 있으며 GNP는 350불,  불교가 성행한다.  Polput의 대학살로 국민의 60퍼센트가 20세 이하로서 마약, 성매매, 청소년 범죄가 범람한다.
모계사회로서 여자들이 경제적인 책임을 지고 있으며 매춘하면 에이즈 걸려 죽을 테니 그만 두라고 하면 “에이즈 걸리면 10년 있다 죽고, 매춘 안 하면 지금 죽는다”고 대답한다고 한다. 120 한인 선교사들이 활동하고 있으며 4개 감리교단의 협력 선교가 독특하다.
캄보디아 신학교는 3년제로 현재 42명 full time 학생이 있으며 모두 기숙사에 거주하며 집중적인 훈련을 받고 있다.  학생당 1년 경비는 약 천불이라고 한다. 
1/3이 여학생이라고 하며, 나는 2학년 수업을 들어갔다.  여학생들이 모두 앞에 앉았지만 내가 가지고 갔던 수첩이 숫자가 모자라 반장이 나누어 주려고 했을 때에는 뒤에 있던 남학생들이 재빨리 나와 집어가는 것을 보고, 여학생들이 어렵게 결단하여 신학교에 오기는 했지만 아직 자기들 밥그릇을 제대로 챙기지 못한다는 인상을 받았다. 

여선교회에 대한 부탁
선교를 위해 돼지도 사서 보내고, 음식도 보내서 그들이 살 수 있게 하기 바란다.그러나 거기서 그치지 말고 여성 지도자 양성을 도와 주기 바란다.  돼지 사고, 교회 짓는 것은 여선교회 아닌 다른 사람들도 할 수 있지만, 여성 지도자 양성은 우리 여자들이 아니면, 다른 사람들은 잘 안하게 된다.  여학생에게 주라고 장학금을 지목하여 학교에 보내면, 학교에서는 여학생을 모집하기 위해 노력하게 되어 반드시 여학생이 공부할 수 있게끔 되고, 장학금을 받는 여학생들은 인정받아 자신감이 생기게 되고, 그 고마움으로 더욱 열심히 공부하고, 더 훌륭한 지도자들이 될 것이다. 

기도
월남과 캄보디아를 다니면서 한국에서 선교하였던 언더우드 선교사의 기도문이 계속 마음에 맴돌아, 그 기도문을 읽음으로써 끝을 맺으려 한다. 

주여, 오직 제 믿음을 지켜주소서.
오 주여, 지금 아무것도 보이지 않습니다.
주님, 메마르고 가난한 땅, 나무 한 그루 시원하게 자라 오르지 못하고 있는 땅에 저희들을 옮겨와 앉히셨습니다.
그 넓고 넓은 태평양을 어떻게 건너왔는지, 그 자체가 기적입니다.
주께서 붙잡아 뚝 떨어뜨려 놓으신 듯한 이곳, 지금은 아무것도 보이지 않습니다.
보이는 것은 고집스럽게 얼룩진 어둠뿐입니다.
어둠과 가난과 인습에 묶여 있는 조선 사람뿐입니다.
그들은 왜 묶여 있는지도, 고통이라는 것도 모르고 있습니다.
고통을 고통인 줄 모르는 자에게 고통을 벗겨주겠다고 하면 의심하고 화부터 냅니다.
조선 사람들의 속셈이 보이지 않습니다.
이 나라의 조정관리들의 내심도 알 길이 없습니다.
가마를 타고 다니는 여자들을 영영 볼 기회가 없으면 어쩌나 싶기도 합니다.
조선의 마음이 보이질 않습니다. 그리고 저희가 해야 할 일이 보이지 않습니다.
그러나 주님, 순종하겠습니다.
겸손하게 순종할 때 주께서 일을 시작하시고,
그 하시는 일을 우리의 영적인 눈으로 볼 수 있는 날이 올 줄 믿나이다.
"믿음은 바라는 것들의 실상이요 보지 못하는 것들의 증거니라."(히 11:1).
이 말씀을 따라 조선의 믿음의 앞날을 볼 수 있게 될 것을 믿습니다.
지금은 우리가 서양귀신, 양귀자(洋鬼子)라고 손가락질을 받고 있사오나
자신들과 우리 영혼이 하나임을, 하늘 나라의 한 백성, 한 자녀임을 알고
눈물로 기뻐할 날이 있음을 믿나이다.
학교도 없고 그저 경계와 의심과 멸시와 천대만이 가득한 곳이지만
이곳이 머지 않아 은총의 땅이 되리라는 것을 믿습니다.
주여, 오직 제 믿음을 지켜주소서!  아멘.(언더우드 선교사의 기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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