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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년 선교부 세미나 강의안: 김흥규 목사(내리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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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KWSCS 작성일 10-01-24 14:30 조회 1,205 댓글 0
 
   "주변부에서 중심부로"


                              김흥규<인천 내리교회 담임목사>

<동이 서에서 먼 것처럼>
제가 미국에서 유학하고 목회할 때에 주변부의식을 털어내기가 가장 어려웠습니다. 남부하고도 텍사스 백인들은 겉은 참 친절하고 부드러웠는데 도무지 속을 알 수가 없었습니다. 저와 같은 아시아 학생들에게 그들이 보여준 관용과 친절은 참 인상적이었습니다. 그러나 저는 무려 13년간이나 텍사스에서 공부했고 목회했지만 백인들의 세계는 언제나 넘어서지 못할 것만 같은 거대한 철옹벽처럼 느껴졌습니다. 이것은 물론 제 개인의 성격이나 문화적인 차이점, 등등 여러 가지 요인 탓으로 돌릴 수 있겠지만 그 기저에는 언제나 소수 인종이 갖는 주변부 의식이 문제였습니다. 저는 비록 1년이라는 짧은 시간이었지만 텍사스를 떠나 네브래스카에서 백인 중산층 교회에서 부목사로 일한 적도 있었습니다. 거의 99.9 %가 백인들로 구성된 아담한 도시였는데 텍사스 사람들에 비해서 훨씬 더 다정다감하고 구김살이 없는 농촌 사람들이었습니다. 학교에서 공부만 하다가 백인 중산층 사람들의 실생활 풍경을 엿볼 수 있는 둘도 없는 기회였기에 저는 정말 최선을 다해서 그들의 생활속으로 파고 들어가 동화되어보고 싶은 마음이 있었습니다. 거의 10년 가까이 미국에 체류해 온 경험도 있을 뿐 아니라 폐쇄적인 텍사스 사람들보다 훨씬 개방적인 네브래스카 사람들이었기에 기대감이 컸지만 결과는 “역시나”였습니다. 시간이 갈수록 그들과 우리는 다르다는 생각이 더 많이 들었고 고독과 소외감은 점점 더 깊어져만 갔습니다. 몇몇 교인들과는 피부색과 문화를 초월해 애틋한 우정을 나눈 적이 왜 없었겠냐만 그 놈의 주변부 의식 하나만큼은 끝내 벗어나기 어려웠습니다. 아마 이와 같은 주변부 의식은 저와 같이 나이 30이 넘어서 외국으로 나간 교민들이라면 누구나 다 경험하는 공동의 장벽인 것 같습니다. 아무리 공부를 많이 했고 돈도 많이 벌어 현지의 중심부에 든 사람들과 어깨를 나란히 했다고 생각할지라도 그것은 어디까지나 주관적인 착각일 뿐 중심부의 현실은 참으로 깨기 어려운 철옹성으로 남을 때가 많습니다.
제가 이와 같은 경험을 말씀 드리는 이유는 세상을 가만히 들여다보면 중심부에 들지 못하고 주변부에서 서성거리는 사람들이 너무나 많다는 사실 때문입니다. 먼저 동남아에서부터 농어촌으로 시집온 여성들의 이야기가 심심찮게 공중파를 탈 때가 있지 않습니까? 한국 남편이나 가족들, 동네 사람들이 아무리 잘 해주어도 그들 역시 주변부 의식을 털어내기가 쉽지 않다는 슬픈 이야기들이 주류를 이루지요. 하물며 단순히 돈을 벌기 위해 우리나라에 들어온 동남아 노동자들의 현실은 말할 것도 없을 것입니다. 아무리 한국 사회의 중심부로 진입해 들어가려고 발버둥 쳐도 머나 먼 신기루처럼 여겨지고 말 것입니다. 중국 화교들이 오랜 역사 동안 우리나라의 중심부에 들지 못하고 아직도 음식점이나 하는 주변부에 서성거리고 있으니 우리나라의 독단성과 폐쇄성도 그 어느 나라 못지않습니다! 실로 동이 서에서 먼 것처럼 주변부에서 중심부로 이동하는 길은 멀고도 험합니다!
<한국 기독교 여성 운동사: ‘주변부에서 중심부로’>
자, 이제 우리는 중심부와 주변부의 개념을 여성 문제에 적용해 볼 차례입니다. 한국 여성사는 한 마디로 말해서 주변부로부터 중심부로 이동해 온 역사로 볼 수 있습니다.  참으로 오랫동안 우리나라 여성들은 남성중심의 세계에 들어가지 못하고 주변부로 밀려난 변방 인생을 살아왔습니다. 아마 이와 같은 주변부 여성의 운명을 가장 극명하게 보여주는 말은 ‘삼종지도’(三從之道)와 ‘칠거지악’(七去之惡)일 것입니다. 전자는 여자가 일생 동안 따라야 할 세 가지 도리인데, 친가에 있을 때는 아버지를 따르고, 시집가면 남편을 따르고, 남편이 세상을 떠나면 맏아들을 따라야 함으로 감히 스스로의 뜻대로 살아서는 안 된다는 가르침이지요. 후자는 유교적 도덕관에 의거하여 아내를 내쫓을 수 있었던 7가지 사유를 의미하는데, ① 시부모에게 순종하지 않는 것(不順舅姑去) ② 자식을 낳지 못하는 것(無子去) ③ 행실이 음탕한 것(淫行去) ④ 질투가 심한 것(嫉妬去) ⑤ 나쁜 병이 있는 것(惡疾去) ⑥ 말이 많은 것(口舌去) ⑦ 도둑질하는 것(竊盜去) 등입니다. 이와 같은 유교적 관념은 불과 몇 십 년 전까지만 해도 우리나라 사람들의 의식구조 깊숙이 뿌리박혀 있었던 생활 인습이었습니다. 여성들은 남성들보다 태생적으로 열등하기 때문에 세상 이치가 남성본위로 굴러 갈 수밖에 없다는 한국식 통념(通念)으로 자리 잡게 되었던 것이지요. 적어도 기독교가 이 땅에 들어오기 전까지 이와 같은 남성의 여성에 대한 성적 우월의식과 여성 일반에 대한 비하의식이 한반도 전역에 두루 편만해 있었던 것이 사실입니다. 한국 선교 초기의 전도부인 중에 한 사람이었던 金世智 는 다음과 같이 증언합니다.

그럼으로 나는 집안 일이 밧분 중에도 그의 갈아쳐 주는대로 틈틈이 쓰기와 읽는 것을 연습하며 성경공부에 열심한 결과 부인이 평양 오시던 해 10월에 드대여 노불 목사의게 세례를 밧고 세듸(Sadie)란 일홈을 엇엇다. 나의 일홈은 그의 부인이 지어준 것인대 오래동안 일홈이 업시 살던 나는 주의 은혜를 힘닙어 세례밧던 날노부터 여자된 권리 중에 한 가지를 찻게 되엿다. 이로보면 조선 여자의 해방은 우리 그리스도교로부터 시작되엿다고 할만하다.
-김세지- 

김세지의 증언에서 우리는 두 가지를 주목해야 합니다. 첫째는 기독교가 들어오기 전까지 조선 여성들은 이름 없이 살아왔다는 사실이며, 둘째는 기독교가 그 이름을 찾게 해줌으로서 모든 굴레로부터 벗어나게 해준 해방자의 역할을 했다는 사실입니다. 그렇습니다. 한국 여성들은 당당히 자기 이름을 갖지 못하고 ‘아무개 딸,’ ‘아무개 누이,’ ‘아무개 어미’로 불리었습니다. 자기의 고유한 이름 없이 타인의 이름에 의존했다는 사실이야말로 자주 독립적인 인격 주체로서가 아니라 타인, 특히 남성에게 종속된 부속물에 불과하다는 여성의 비인격성을 그대로 보여줍니다. 바로 이와 같이 억압과 굴종 속에서 허덕이던 조선 여성들을 자유와 해방의 빛으로 인도했던 해방자가 바로 기독교 복음이었습니다. 실로 복음은 조선 여성들에게 있어서 ‘자유와 해방의 기쁜 소식’이 되었던 것입니다! 복음은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음 받은 여성이 남성과 동일하게 존재론적으로 평등하다는 의식을 조선 여성들에게 심어주었던 것이지요. 아버지와 남편, 아들로 대변되던 남성중심 세계의 주변부에서 서성거리던 여성들이 마침내 양성평등 의식을 가지고 중심부로 진입해가는 본격적인 문호가 열리게 된 것입니다!
<페미니스트 예수>
가부장제도적 압제와 굴종의 굴레로부터 여성들을 자유와 해방으로 인도하신 분은 우리 예수님이셨습니다. 예수님 시대의 유대인 남성들은 매일 세 가지 이유 때문에 감사 기도를 올렸습니다. 첫째는 자신들이 여성이 아닌 남성으로 태어났다는 사실, 둘째는 노예가 아닌 자유인으로 태어났다는 사실, 셋째는 이방인이 아닌 선민 유대인으로 태어났다는 사실 때문이었습니다. 여성은 철저히 남편에게 종속된 개인 소유물에 지나지 않았으며 어린아이와 함께 인구 계수에도 포함되지 못했습니다. 한 마디로 유대 여성은 인격적인 대우를 전혀 받지 못한 노예와 같이 비천한 사람의 대명사가 되었던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 예수님은 세리와 창녀, 병자 등 주변부로 밀려난 사람들의 친구가 되어 주셨으며 남성 중심의 기존 질서와 인습을 타파하는 치열한 인간애를 보여주셨습니다. 예컨대, 마르다와 마리아는 예수님의 절친한 친구들이었습니다(눅 10: 38-42; 요 11: 1-57, 12: 1-11). 귀한 손님이 집에 찾아 올 경우 대개 남자가 마중을 나가는 유대 풍습과는 달리 여성인 마르다가 예수님을 영접했다는 이야기는 분명 남성 중심의 세계관과는 낯선 親여성적인 예수님의 모습을 시사해줍니다. 뿐만 아닙니다. 마르다가 주님의 부활과 관련해서 요 11: 25-27에서 했던 고백, “주는 그리스도시요 세상에 오시는 하나님의 아들이신 줄 내가 믿나이다.”는 마 16: 16의 베드로의 유명한 신앙고백, “주는 그리스도시요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시니이다.” 못지않게 위대하고 중요한 신앙고백입니다. 간음하다가 현장에서 잡힌 여인을 주님이 용서하신 이야기도 페미니스트 예수像을 입증해줍니다(요 8: 1-12). 예수님은 남성중심의 사회가 율법과 인습을 잔인하고 폭력적으로 악용해온 경향성을 충분히 숙지하셨기에 아무런 법적인 보호도 받지 못하고 벼랑 끝에 선 여인을 구해주셨던 것입니다. 그리하여 예수님은 손으로 쓴 율법의 글씨를 뛰어넘어 모든 인류의 가슴 깊은 곳에 흐르는 보편적인 양심에 호소하셨습니다. “너희 중에 죄 없는 자가 먼저 돌로 치라.” 문자화된 율법이 중요하지만 그 보다 훨씬 더 중요한 것이 그 법을 해석하고 적용하는 사람들의 인간애와 본연의 양심이라는 진리를 일깨워주셨던 것이지요.
예수님이 얼마나 여성들의 인격과 권익을 존중하셨는가 하는 것은 비유에서도 잘 나타납니다. 여성이 주인공으로 부각되어 있는 누가복음 속의 두 비유를 예로 들어보겠습니다. 먼저 눅 18: 1-8에 보면 불의한 재판관에게 저항한 끈질긴 과부 이야기가 나옵니다. 재판관은 하나님도 두려워하지 않고 사람도 무시하는 악질 재판관이었습니다. 시시비비를 가려야 하는 판사로서는 최악의 사람이었던 것이지요. 이에 맞서는 사람은 가난한데다가 의지할 데 없는 과부였습니다. 여성인 것만으로도 차별받던 시대인데 남편까지 잃어버린 과부였으니 그야말로 주변부 중에 주변부, 인권의 사각지대에 선 불쌍한 여인이었습니다. 그러나 이 여인에게는 최고의 무기가 있었습니다. 포기하지 않는 인내심과 집요한 뚝심이었습니다. 가난한 과부는 불의한 재판관은 물론이고 억압적인 법질서와 제도에 저항했습니다. 예수님은 이 비유의 최후 승자를 가난한 과부로 설정하셨습니다. “주변부의 맨 가장자리에 서 있던 가냘픈 여성이 중심부의 전위에 서 있던 판사를 이겼다.” 페미니스트 예수님의 생각을 유감없이 전달하는 명비유가 아닐 수 없습니다.
또 한 가지 눅 15: 8-10에는 잃어버린 동전을 찾는 여성의 비유가 나옵니다. 사람들은 흔히 이 비유에서 잃어버린 동전 한 드라크마, 즉 ‘돈’에만 관심을 기울입니다. 한 드라크마는 아주 적은 돈입니다. 드라크마는 데나리온과 같은 화폐량으로서 고용일군의 하루 품삯입니다. 그 당시 팔레스타인 지역에서는 10 드라크마를 가지고서는 겨우 몇 주 밖에 연명할 수 없었습니다. 헤롯이 한 때 병사들에게 150 드라크마를, 장교들에게는 훨씬 더 많은 금액의 돈을 지불했다는 기록을 볼 때, 당대의 남성들이 받았던 돈과 이 여인의 돈은 비교가 안 되었지만, 이 가난한 여인에게만큼은 거금이었습니다. 그래서 이 여인은 정성을 다해서 잃어버린 한 드라크마를 찾습니다. 먼저 등불을 켰습니다. 대낮임에도 집안이 어두워서 등불을 켰다는 것은 그 집이 얼마나 열악한 구조로 되었는가를 암시합니다. 그런 다음 종려나무 가지로 만든 빗자루로 구석구석을 쓸었습니다. 돌로 된 방바닥에 빗자루로 쓸 때 “쨍그랑” 하고 동전 소리가 날 수 있었기 때문이지요. 실로 이 여인은 동전 한 닢에 자신의 생존권이 걸려 있었기 때문에 집안 구석구석을 샅샅이 뒤지고 또 뒤졌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이 비유에서 참으로 강조하시고 싶었던 요점은 드라크마 한 푼에 자신의 명운을 거는 여성의 처절함과 지극정성일 것입니다. 오늘 우리 눈으로 보면 그깟 동전 한 닢, 그냥 잃어버려도 괜찮지 할 터인데 이 여인에게는 그렇지 않았습니다. 동전 한 닢에 며칠 동안의 생계가 걸려있었기 때문에 죽기 살기로 찾고 또 찾았던 것입니다. 그래서 이 비유의 결론이 중요합니다. 동전 하나를 되찾았을 때 온 친구들과 이웃을 불러 잔치를 베풀며 기뻐한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동전 한 푼에 인생을 거는 이 여인의 절박한 사정을 헤아리지 않고서는 이 말씀이 이해가 안 될 것입니다! 이렇게 예수님은 주변부로 밀려난 여성들에 대하여 끝없는 연민과 사랑의 정신으로 누구나 올 수 있는 하나님 나라의 식탁으로 초대하셨습니다! 물론 이와 같은 예수님의 양성 평등적 정신은 기독교가 제도화되어가는 과정중에 침식되고 훼손된 나머지 상당 부분 ‘가부장제적-위계주의적 기독교’로서 대체되어 온 것이 역사적 사실입니다. 그러나 기독교의 가부장제화의 원흉쯤으로 알려진 바울조차도 “그리스도 안에서 남성과 여성이 하나”(갈 3: 28)라고 선언함으로서 超성차별적인 비전을 제시했습니다. 결국 이와 같은 예수님의 양성 평등의 정신이 기독교 역사에 면면히 이어와 121년 전 한국에 까지 상륙해 온 결과 놀라운 여성 해방운동이 일어나게 된 것은 너무나 잘 알려져 있습니다.
<주변부가 아닌 중심부에 서자>
자, 그렇다면 남성 중심적인 가치관과 세계관을 뛰어넘어, 즉 중심부에 머무르지 않고, 양성 평등적이며 포괄적인 이상을 제시하셨고 이를 몸소 실천하심으로서 주변부로 눈을 돌리신 예수님의 뒤를 따르는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할까요?
첫째로, 예수님을 뜨겁게 사랑하는 여선교회 회원들이 되어야 할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달려 돌아가셨을 때 남성 제자들은 너나 할 것 없이 예수님을 배신했고 떠났습니다. 그런데 여성 제자들은 예수님의 최후를 끝까지 목격했고 부활하신 주님을 최초 목격하는 영광을 얻기도 했습니다. 오늘날 한국 교회의 70%는 여성 신도들이라고 합니다. 하나님께서 그렇게 지으셔서 그런지 여성들의 신앙심과 영성은 남다릅니다. 그리하여 한국 여성 신도들은 기도하고 찬양하는 일에는 언제나 주변부가 아니라 중심부에 서 왔습니다. 이와 같이 예수님 사랑해서 기도하고 찬양하고 성경공부 열심히 하는 일에는 항상 주변부가 아닌 중심부에 서는 전통은 지속되어야 할 미덕인 것입니다.
둘째로, 오늘 한국 사회에서 주변부로 밀려난 사람들을 사랑과 자비로 돌봐야 할 것입니다. 그들이 남성이든 여성이든, 노인이든 젊은이이든, 내국인이든 외국인이든 가리지 말고 돕고 섬기는 일에 앞장 서야 합니다. 저는 한국에 오기 전 미국 텍사스 주에서 국제 결혼한 자매들을 대상으로 목회한 적이 있습니다. 이른바 이중문화 가정 자매들 가운데 어려운 일이 생길 때 지역과 종교를 떠나 거의 모든 자매들이 똘똘 뭉쳐 도와주는 일을 자주 목격할 수 있었습니다. 이른바 ‘자매의식의 연대성’(solidarity of sisterhood)이 확실히 살아 있었던 것이지요. 오늘 우리 주변에도 보면 가부장제적 압제와 폭력으로 시달리는 자매들이 적지 않습니다. 더욱이 농어촌 지역에서 국제결혼한 동남아 출신 자매들이 당하는 설움과 압제와 폭력은 이만저만이 아닙니다. 우리 감리교 여선교회 회원들은 이런 자매들과도 보편적 자매의식을 가지고 힘써 돌봐야 할 것입니다. 이와 같이 한국 사회의 중심부에서 주변부로 밀려나 고난 받는 형제자매들을 섬기고 돌보는 일에는 주변부로 밀려나지 말고 중심부에 서는 여선교회가 되어야 합니다. 
셋째로, 화해와 일치에 앞장 서야 할 것입니다. 예수님은 화평케 하는 사람이 하나님의 자녀로 일컬음을 받는다고 말씀하셨습니다(마 5: 9). 오늘 날 한국 사회는 갈가리 찢겨 산산조각이 나고 있습니다. 극빈층과 극부층의 간격이 너무 큽니다. 좌와 우의 이념 대립이 도를 넘어 서고 있습니다. 심지어 우리 아이들을 가르치는 교사들 가운데에도 전교조와 교총의 이념적 대립이 뚜렷한 형편입니다. 나이 많은 세대와 젊은 세대의 대화도 인터넷 시대가 열린 후부터는 눈에 띄게 격조해지고 있습니다. 교파간의 난립, 교단내의 파벌 싸움도 만만치 않습니다. 우리 여선교회 회원들은 이와 같은 첨예한 相爭을 종식시키고 相生의 시대를 열어가는 일에 중심부에 서야 할 것입니다. 저는 한국 감리교 여선교회의 자랑거리 중 하나는 한 번도 분열된 적이 없다는 사실에 있다고 들은 적이 있습니다. 교단이 여러 차례 분열의 진통을 앓는 한 가운데에서도 유독 여선교회만큼은 일치단결해 왔다는 것이지요. 참 자랑스러운 전통이 아닐 수 없습니다. 이제 교회안은 물론이고 한국 사회 전반에 독버섯처럼 번져있는 일체의 갈등과 분열을 종식시키고 일치와 화해를 구현해 나가는 일에 여선교회 회원들이 중심부에 서야 할 것입니다.

“내가 만약 누군가의 마음의 상처를 막을 수 있다면 헛되이 사는 것 아니리
내가 만약 한 생명의 고통을 덜고 기진맥진해서 떨어지는 울새 한 마리를
다시 둥지에 올려놓을 수 있다면 내 헛되이 사는 것 아니리.”
― 에밀리 디킨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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