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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기농 수입이 가능한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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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KWSCS 작성일 10-01-24 15:08 조회 1,415 댓글 0
 
   유기농, 수입이 가능한가?

                                                                                          김 은 진 사무국장
                                                                            (유전자조작식품반대 생명운동연대)

  ‘잘 먹고 잘 사는 법’의 유행 이후 한 때일 것이라고 생각했던 열풍이 웰빙 바람까지 타고는 좀처럼 수그러지지 않는다. 한 편에서는 이런 웰빙 바람으로 우리나라의 유기농이 발전할 것이고 농민의 소득이 높아질 것이라는 긍정적인 평가가 있는 듯하다. 하지만 문제는 이런 열풍이 유기농의 의미를 완전히 왜곡한다는 점이다. 곳곳에 유기농 매장이 들어서고, 백화점에서는 수입한 유기농을 유기농이라고 광고하고, 인터넷에 일본이나 그 외의 나라에서 들어오는 농산물이 버젓이 유기농이라는 딱지를 붙이고 다닌다. 도대체 한 때 그렇게 눈 씻고 찾아봐도 좀처럼 찾을 수 없었던 그 많은 유기농들이 어디서 그렇게 쏟아져 나오는 걸까? 그건 정말 다 유기농일까?
 
요즘 들어서는 유기농까지도 수입하는 지경에 이르렀다. 여기에서 유기농 열풍이 수입 유기농으로까지 확산하는 과정에 대해 두 가지 문제를 짚어 보자. 첫째는 역시 국산보다는 외제를 더 선호하는 일부 몰지각한(?) 부유층의 문제가 있을 수 있겠다. 하지만 이번의 선호도는 언론에서 자주 쓰는 일부 몰지각한 부유층만의 문제는 아니라고 생각한다. 오히려 사회 전반적인 문제이다. 사실 식품이나 의약품에 관한 광고에서 가장 높은 신뢰도를 얻는 것 가운데 하나가 미국의 식품의약청(통상 FDA라고 부른다)의 승인을 얻었다는 광고이다. 두 번째 문제는 우리나라에서 생산 안하는 것은 수입을 해서라도 유기농을 먹어야 하지 않겠는가라는 소비자들의 유기농 선호에 있다. 따라서 이 두 가지 문제를 살펴보는 것으로 수입 유기농을 어떻게 볼 것인지에 관한 입장을 정리해 볼 수 있을 것이다.
 
첫째, 외국, 특히 미국이나 일본 등의 선진국의 인증이 우리나라의 인증보다 더 믿을 만한가? 어느 나라의 인증이건 인증만 있으면 그것은 유기농이라 부를 수 있는가? 두 질문에 대한 대답은 모두 ‘아니오’ 이다. 우선 첫 질문에 대한 대답이 왜 아니오 일까? 물론 그 나라들의 제도가 우리나라의 제도보다 훨씬 잘 되어 있다는 것은 한편으로는 사실이다. 하지만 여기에서 꼭 짚고 넘어가야 할 문제가 있다. 10여 년 전 우리나라에서 배 음료수가 유행을 했다. 물론 지금까지도 많은 종류의 배 음료수가 나오고 있다. 하지만 그 배 음료수가 처음 나온 데는 이런 뒷이야기가 있다. 그 해에 미국에서 엄청난 양의 우리나라 배를 수입하기로 했다. 미국이나 일본은 농산물을 수입할 때 그냥 하는 것이 아니라 직접 수출할 나라에 가서 생산과정을 일일이 다 검사하기로 유명하다. 그래서 미국에서 검사를 왔다. 그 미국인 검사관들은 우리나라의 농촌에 그때까지도 남아있던 재래식 화장실을 보고 기절초풍을 했단다. 그렇게 더러운(?) 화장실 옆에서 자란 배를 믿을 수 없다고 전면 수입을 거절해 버린 것이다. 그러나 이미 생산된 그 많은 배를 어찌할 것인가? 그래서 배 음료수가 우리나라에 나올 수밖에 없었다고 한다. 그 당시 수출하기로 했던 배가 다 취소되었다는 것도 사실이고, 그 때쯤 배 음료수가 엄청나게 많이 나왔던 것도 사실이니 그 상관관계를 인정하든 안하든 간에 어느 정도 개연성이 있는 것만은 사실이겠다.

새삼 이 이야기를 들추는 것은 이 사실 만으로도 외국의 인증이 더 믿을 만하지는 않다는 것을 알 수 있기 때문이다. 각 나라는 나라마다 자신들만의 기준이 있기 마련이다. 그리고 그 기준은 그 나라의 농업 현실에 맞게 정해진다. 우리나라는 축분이나 인분 비료가 중요한 비료 가운데 하나이기 때문에 재래식 화장실이 있다는 것 자체가 더러움이 아니라 자연스러움이다. 그러나 농업 현실이 다른 외국인들에게 그것은 더러움으로 비쳐질 수 있다. 하지만 그들이 더러움이라고 한다고 해서 우리에게까지 그것이 더러움은 아니다. 마찬가지로 나라마다의 인증은 그 나라의 특수성에 따라 조금씩 차이가 있기 마련이다. 그러니 외국의 인증이 꼭 더 나은 것은 아니다.

이제 두 번째 질문으로 가자. 어느 나라 것이건 인증만 있으면 유기농인가? 얼마 전 생협에 배추를 주문한 나는 배추와 함께 엄청난 선물을 받았다. 바로 우렁이가 따라 온 것이다. 그 우렁이는 배추의 건강함을 보여준 셈이었고 한동안 우리 집 유리병에서 잘 자라다 어느 날 문득 하늘로 갔다. 우리 아이들이 다들 서운해 했다. 한동안 우리 눈을 즐겁게 해주었는데, 유기농이란 그런 것이라고 생각한다. 가끔 뜻하지 않은 선물이 함께 오는 것. 그리고 그 선물을 보면서 잠깐이나마 즐거워하는 것. 여기에서 이런 상상을 해보자. 우리나라에 농산물이 수입될 때에는 식물검역소를 거쳐야 한다. 검역소에서는 그것이 유기농이건 일반 농산물이건 달리 취급하지 않는다. 외국에서 들어온 유기농 속에 이런 선물이 있었다고 한다면 어떻게 할 것인가? 식물검역소는 이것을 선물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그리고 실제로 이것은 선물이 아니다. 선물일 수가 없다. 왜냐하면 그 생물은 우리나라의 생태계를 파괴할지도 모르는 무서운 것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검역소는 가차없이 농약을 뿌려 그것을 없애 버린다. 만약 이런 상상이 사실이라면? 유기농 속에 딸려온 생물을 없애기 위해서 농약을 친 그것은 이미 유기농이 아니다. 그래도 외국에서 인증을 받은 것은 사실이니 그 인증표시는 그대로 따라 다닌다. 아직도 그 수입 농산물을 유기농이라고 부를 것인가?
 
이것은 상상에 기초한 것이니 이것만으로 ‘아니오’ 라는 답이 충분하지 않다고 생각할지도 모르겠다. 그래서 여기에 또 다른 답이 있다. 바로 우리가 유기농이라고 부를 때 “유기”의 뜻이 무엇인가이다. 유기라는 것은 생물체를 뜻하는 것이고 하나의 생물체를 뜻하는 것이 아니라 생물체 간의 관계를 말하는 것이다. 디즈니에서 나온 유명한 만화 가운데 ‘라이언 킹’이란 만화가 있다. 그 만화에서 내가 건진 교훈이 있다면 그것은 만화 주인공인 아기사자가 아빠사자에게 한 질문과 대답이다. 아기사자는 이렇게 물었다. “아빠, 왜 우린 다른 동물들을 잡아먹어야만 하지요?” 그 아빠 사자의 답은? “우리가 다른 동물을 잡아먹기만 하는 것은 아니란다. 우리가 죽으면 우린 흙으로 돌아간다. 그리고 그 흙에서 풀이 자라고 그 풀을 먹고 동물이 자라고 그 동물을 우리가 먹고 또 다시 흙으로 돌아가고. 세상은 그런 것이란다.” 아, 그 대답의 심오함이여! 난 그 때 그렇게 감탄을 했다. 어느 누가 생명의 신비를 그토록 간결하게 설명해 줄 수 있을까?
  그렇다. 내 조상이 흙으로 돌아가고 그 흙에서 양분을 얻어 자란 식물을 내가 먹으면서 자라는 것. 그리고 그 흙으로 내가 다시 돌아가는 것, 그것이 바로 유기농이다. 생명이 끊임없이 순환하며 세상의 모든 생명체가 서로를 희생하며 또 서로를 도와가며 조화롭게 살 수 있도록 하는 것, 그것이 유기농이다. 그러니 나와 그런 관계를 전혀 가지지 못한 수입 농산물은 농약과 화학비료를 안 쳤을지는 모르지만 ‘유기’농산물은 아니다.
 
이제 두 번째 문제를 돌아보자. 유기농이 유행이다 보니 부딪치는 문제 가운데 하나가 우리나라에서 생산하지 않는 농산물은 어찌할 것인가이다. 그래서인지 요즘은 설탕, 커피 등을 유기농이란 이름으로 수입하고 있고, 바나나, 파인애플 등의 과일도 유기농을 수입하자는 이야기가 간간히 들린다. 한때 유행했던 “대장금”이란 드라마를 본 사람은 알 것이다. 사실 우리나라는 설탕이 없던 시절에도 충분히 단맛을 즐기며 살았다. 사실 몇 십 년 전만해도 설탕은 귀한(?) 음식이었다. 커피도 마찬가지였다. 그런데 모든 것이 당연한 기호식품 내지는 생필품이라고 여겨지기 시작하더니 수입하자고 야단이다. 하지만 다시 한 번 생각해 보자. 설탕이 아니라도 단 맛을 낼 수 있는 것은 얼마든지 있다. 커피가 아니라도 심심한 우리 입을 잠시 즐겁게 해줄 음료는 얼마든지 있다. 유기농은 관계이고 그 관계는 내 땅과 그 땅에서 자라는 생물과 인간간의 관계이다. 내 땅에서 찾기 위한 노력을 하지 않고 ‘그냥 있는 것이니 쉽게 설탕이나 커피로 하면 된다’라는 생각은 진정한 “유기”적 관계가 아니다.
 
바나나, 파인애플은 한 술 더 뜬다. 사실 국산 바나나와 파인애플이 있었던 시절도 있었다. 하지만 값싼 수입 바나나와 파인애플에 밀려 제주도에서 생산을 포기했을 뿐이다. 그렇게 해서 제주도 농민들은 귤에 모든 힘을 쏟았고 그래서 나타난 결과가 귤값 폭락이다. 거기다 이제 오렌지까지 수입하고 보니 제주도는 귤 농사도 포기해야 할 판이다. 그렇게 내 나라의 농민을 망하게 하는 것이 유기농일 수는 없다. 왜냐하면 유기농은 관계이고 그 관계는 사람간의 관계도 중요하기 때문이다.
 
  이미 앞에서도 말했지만 유기농이란 것은 내 땅을 벗어나서는 불가능한 것이다. 땅과 물과 햇빛과 사람의 정성이 모두 담겨 자라는 것이 유기농이다. 그렇게 자란 것만이 유기농이라는 이름을 가질 수 있다. 외국에서 농약이나 화학비료를 안 친 것을 수입해도 좋다. 하지만 거기에다가 “유기농”이라는 이름을 붙여서는 안 된다. 그건 그 나라 국민에게는 “유기농”이지만 우리나라 국민에게는 유기농이 아니다. 단지 재배할 때는 농약이나 화학비료를 안 친 수입농산물일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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