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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kwscs 작성일 10-09-30 17:22 조회 1,073 댓글 0
 
 

땅 끝을 향한 선교의 확산


많은 사람은 거대한 부흥과 선교운동이 교회의 지도자들로부터 시작되기를 기대한다. 그러나  부흥과 선교운동은 항상 평범한 사람들로부터 시작되었다. 예수님, 스데반, 빌립, 사울, 프란시스, 그리고 ...


현대 선교의 아버지라고 불리며, 교육을 받지 못한 한 가난한 구두 수선공, 사업에서는 실패했던, 영국 분리파(영국 국교로부터)에게는 별로 인기 없었던 설교가, 윌리암 케리(Willam Cary)이다. 그가 미전도 종족에게 복음을 전하기로 마음 먹었을 때 그의 직업에 충실하고 다른 생각을 갖지 말라는 충고를 받았다. "젊은이 침착하고, 자네는 너무나 흥분되어 있어! 하나님께서 이교도들을 개종 시키려고 하실 때 그분이 자네나 나의 도움 없이도 그들을 개종 시키실 것이야!" 이러한 칼빈주의의 예정론의 오용은 이교도의 개종은 그 누구의 책임도 아니고 하나님의 일이라 생각하게 만들었다. 그러나 Carey는 직업에 충실하라는 충고를 거절하고 87페이지 분량의 "이교도를 개종 시키는데 수단을 사용하는 그리스도인의 순종에 대한 연구"(1792)는 글을 남겼다. 종이와 펜 그리고 극빈자였던 그는 시대에 중요한 논리와 선교를 가로 막고 있던 실제적인 방해물에 도전했다. 그리고 그를 인도에 파송했던 Baptist Missionary Society(침례교 선교회)를 고무시켰다. 그리고 자신의 남은 40년의 여생을 하나님을 위한 일에 헌신했다.

Carey의 유산은 불행 안에서의 인내였다. 그는 절대로 휴가를 사용하지 않았으며, 포기 하지도 않았다. 그는 말쟁이 칼빈주의자, 가족의 반대, 문화충격, 새로운 언어, 사회적인 부조화 , 가난, 질병, 상실감 그리고 외로움에 대항하여 맞서 싸웠다. 그의 인생의 말년에 그는 "나는 끈기가 있다. 나는 어떤 어려운 일에도 견딜 수 있다. 그 모든 것이 하나님의 은혜이기 때문이다."라고 말했다. 

Carey의 약진은  "개신교 선교의 위대한 세기"의 시작을 만들었다. 이에 대한 네가지 이유가 있다. 첫째 서구에서 Robert Morrison, Adoniram과 Ann Judson, David Livingstone, Hudson, Maria Taylor, Lottie Moon 그리고 Amy Carmichael를 포함해 수천명의 선교사를 파송하는 교단선교본부가 최근 나타나고 있으며, 둘째 Carey의 삶과 사역은 유럽과 북 아메리카의 영어 사용자 교회가 거대한 선교에 동참하는 촉매제가 되었으며, Carey의 시대로부터 1990년대까지 영어 사용자가 세계 선교사의 80%를 차지했다. 셋째 비 서구에서의 교회의 성장을 낳았으며, 선교사의 발걸음이 알려진 모든 지역에 닿았고, 모든 종교로부터 개종자를 얻었다. 1800년부터 1900년까지 아시아, 아프리카, 남 아메리카의 개신교는 1%에서 10%로 증가되었다. 네째 대서양 양쪽(유럽과 북 아메리카)에서 개신교 선교회가 놀랍게 증가되었기 때문이다. 

19세기와 20세기는 선교와 교회의 성장이 비 서구 지역에서 일어 났으며, 서구인의 종교라는 오명이 씻어지게 되었다. 미전도 종족 복음전파의 놀라운 성장(1900)은 WIllam Carey의 헌신과 개신교 선교운동과 함께 일어났다.

어떤 사람은 아직도 선교단체는 교회가 약할 때 나타나며, 지금은 교회가 강하기 때문에 어떤 단체도 필요치 않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선교단체는 교회가 강력할 때 나타난다. 지난 18세기 동안 개혁을 위한 움직임이 전 대륙에 걸쳐 일어 났으며, 세계복음화의 자각이 최고에 달했다. 실제적으로 서구의 모든 교단이 어떤 방식으로든 개혁되었다. 선교단체는 교회의 연약함의 표시는 아니다. 그러나 교회의 건강함과 깨어 있음에 대한 열매이다. 1792년 Carey선교회는 250년 동안의 개신교의 전통을 깨뜨렸으며, 교회와 전 세계에 선교단체의 끊임없는 증가를 낳았다.

옥스포드 대학교 학생이었던 죤과 찰스 웨슬리는 20대에 성령그룹(The Holy Club)를 1729년에 창설했다. 죠지 윗필드도 이 그룹에 참여했으며, 후에 자신 만의 사역을 만들었다. 제자훈련과 묵상은 아주 작고 멸시 받던 학생 그룹이 개신교 선교의 위대한 19세기의 영적인 기초를 제공했던 감리교회의 부흥운동과 복음화의 자각을 만들어 냈다. 죤과 찰스 역시 선교사가 되었다.

세계 선교운동에 북 아메리카의 참가도 예외는 아니었다. 이러한 조짐은 1806년에 있었다. 사무엘 밀스와 네명의 대학생은 천둥과 번개가 칠 때 정기 기도모임을 향하고 있었다. 이들은 건초더미 밑의 조그만 장소에서 이들은 기도하면서 미국에서 첫번째 선교사가 되기로 서약했다. 이들은 "만약 우리가 소원한다면 우리는 해 낼 수 있을 것이다."라고 말했다. 바로 건초더미 밑에서 했던 기도가 역사적인 사건을 만들었다. 밀스는 학생 선교운동을 시작했던 학교 내 기도모임을 만들었으며, 후에 세계 선교를 위한 미국선교회(American Board of Commissioners for Foreign Missions, ABCFM), 미국 침례교 선교회(American Baptist Mission Board)의 전신이 되었다. 위의 두 선교단체는 Adoniram Judson을 인도와 버마에 파송하는 기관이 되었다. ABCFM과 AMBMB 그리고 다른 선교단체들 역시 놀랍게 증가했다.

영국의 허드슨 테일러(Hudson Taylor)가 선교에 관심을 갖고 있을 때 그 역시 5살에 불과했으며, 17세에 그리스도를 영접했다. 그는 자신의 삶을 하나님의 선교에 초점을 맞추었으며,  그의 나이 21살에 중국으로 출발했다. 그가 중국어를 배우며 내륙 지방을 여행하며, 중국인 옷을 입고, 중국인 머리 모양을 지니고(길게 따 내렸음) 등 중국인 문화를 수용해 갔다. 이것은 기독교가 서구 문화의 옷을 걸치고 있는 동안 기독교는 자신들의 것이 아니다라고 느겼던 Taylor 당시 사람들의 전통적인 관념으로부터의 급진적인 발전이었다. 다른 선교사들은 비판했으며, Taylor와 그의 접근 방식을 조롱했었다. 그러나 그는 선교사와 파송교회는 선교 사역에 자신들의 문화를 주입해서는 안 된다는 것을 선교학적 원리로 세워 나가고 있는 현재의 선교원리를 세우고 있었다.

테일러시대 모든 선교 단체들은 사역의 범위를 섬과 연안지역으로 제한하고 있었다. 무엇인가를 새롭게 시도하는 20대에 그는 중국의 내륙에까지 선교사를 보낼 수 있는 새로운 선교단체를 꿈꾸었다. 많은 사람들의 "왜 새로운 선교단체를 만들었는가? 언제 그렇게 많은 사람들이 가입하게 되었는가? 연안지방의 사역을 마무리 하지도 못하고 왜 내륙으로 들어갔는가?"라는 질문했다. 그러나 그는 고착화된 형틀을 깨뜨렸다. 어느 주일 그는 교회에서 밖으로 나오고 있었다. 그는 표현하길 "수백만이 복음을 들어보지 못하고 죽어가는 동안 수천명 혹은 그 이상의 그리스도인들이 자신들의 안전함을 즐기고 나오는 모습을 도저히 쳐다볼 수 없었다. 그래서 나는 영적인 고뇌와 함께 해변을 거닐었고, 그때 하나님께서 나의 믿음 없음을 지적하셨고, 나는 중국의 영적인 필요와 요구를 절감하며 내 자신을 다시 한번 더 하나님께 헌신했다." 이것이 Taylor의 벧엘(야곱이 하나님을 만난 곳)이 되었다. 1865년 그는 중국 내륙선교회(China Inland Mission)를 창설했으며 지금까지 수 천명의 남녀를 중국에 파송하고 있다. 중국이 공산화된 후 1964년 이름을 OMF(Overseas Missionary Fellowship)으로 변경했다.


1885년 스터드(C.T. Studd)와 켐브릿지의 6명은 자신들의 경력과 신분을 버리고 Hudson Taylor의 China Inland Mission (CIM)에 가입했다. 이것은 전 세계의 이목을 끌었으며 미국에서 학생자원봉사운동을 만들게 했다. C.T. Studd는 "만약 그리스도가 하나님으로써 나를 위해 죽으셨다면 그분을 위한 나의 어떤 희생도 그분의 십자가 보다 크다고 말할 수 없다."고 말했다. 이렇게 켐브릿지의 7인이 중국으로 떠난 1885년부터 5년 동안 CIM는 전 보다 두배나 많은 선교사를 파송했다. 그리고 수백명의 새로운 선교사 지원자가 다른 선교단체들을 통해 연결되었다. 그러나 캠브릿지 7인의 중국에서의 사역 역시 유일한 것이었으며, 후에 딕슨 호스트(Dixon Hoste)는 CIM의 부 총재가 되었으며, 1913년 Studd는 "빠른 시일에 지구상의 미전도 종족에게 복음을 전하자!"는 표어 아래 WEC 국제선교회(World Evangelization Crusade)를 창설했다.


1886년 무디(D.L. Moody)는 미국의 메사추세츠주의 헐몬(Hermon) 산의 자신의 학교 운동장에서 개최된 한 달 동안의 학생 수련회에 참석하고 있었다. 250여개 대학교에서 온 학생들이 세계 복음화의 열정에 빠져들고 있었다. 수련회 마지막 날 100여명의 학생이 "외국 선교사가 되는 것에 대한 하나님의 허락을 소망하며 갈망 한다"는 "프린스톤 서약"(Princeton Pledge)에 참여했었다. 이것이 땅 끝까지 수천명의 자원봉사자를 파송 했으며, 19세기가 다가오는 시대에 미국교회에 선교에 대한 열정을 낳게 만든 학생 자원봉사자 운동(Student Volunteer Movement, SVM)이 되었다. SVM은 1888년 죤 모토(Johm R. Mott)에 의해 창설되었으며, 30여년 동안 이 단체를 이끌어 갔다. 이들은 "우리 세대에 세계를 복음화 하자!"라는 표어를 주장했으며, 50년 동안 10만명의 학생들이 선교사가 되었다. 대부분이 북 아메리카 출신인 2만5백명이 선교사로 파송 되었으며, 이들 중 30%가 중국으로, 20%는 인도로 갔다. 다른 8만명은 국내에 남아 선교를 위한 기도와 후원으로 참여했다.

20세기는 기독교 역사에서 아주 중요한 전환점이었다고 말할 수 있다. 첫번째, 비 서구 지역의 개신교 비율이 1900년 10%에서 2000년 67%로 증가했다. 기독교는 이제 더 이상 서양의 종교가 아닌 것이다. 오늘날 많은 그리스도인들 아프리카, 아시아, 남 아메리카와 태평양에 살고 있다. 이것은 종교개혁이후 기독교가 가장 커다란 성장을 한 것이다. 두번째, 병을 치료하는 운동을 포함한 오순절 부흥이 수천명의 선교사를 세계 곳곳에 파송하는 등 한 세기 동안 전 세계에 걸쳐 확산되고 있다. 세번째, 여러 다른 사람들로부터의 시작된 상황화 이론이 서구 신학이 이루어 놓은 것보다 더 세계의 잃어버린 영혼에 대하여 민감한 하나님, 성경, 선교를 전파하기 위해서 서로 연합하고 있다. 네번째, 현재 비서구권 선교사가 서구권 선교사보다 많다. 선교는 더 이상 백인들의 짐이 아니며 다 문화, 다 국가운동이 되었으며, 과거에 선교사를 받아 들였던 나라들이 이제는 국내 혹은 국외의 미전도 종족에게 복음을 전하는 선교사를 파송하고 있다.

선교사는 항상 특별한 그룹의 사람에게 복음을 전한다. 그러나 20세기에 들어서  특별히 교회가 온 나라에 확산된 이후 미전도 종족이 보다 더 세밀하게 구분되고 구체적으로 이들 속으로 선교사가 들어가 복음을 전하고 있다. 그러나 이전 1913년 C.T. Studd는 Heart of Africa Mission(현재는 World Evangelization for Christ , WEC 국제선교회)을 설립해 "미전도 종족에게 가장 빠르게 복음을 전하자!("the remaining unevangelized peoples on earth in the shortest possible time.")는 표어를 갖고 미전도 종족에게 다가 갔었다. 1917년 윌리암 카메론 타운센드(William Cameron Townsend)가 과테말라에서 스페인어성경을  판매하고 있을 때 Cakchiquel어를 하는 한 인도인의 질문이 그의 생애를 완전하게 바꾸어 놓았다. 그 인도인은 "만약 당신의 하나님이 그렇게 훌륭한 분이시라면 왜 당신은 우리 캌키쿠웰(Cakchiquel)어를 할 수 없는가? 라고 내뱉었다. 그리고 Townsend는 스페인어는 과테말라 사람에게 복음을 전할 수 있는 수단이 아니라는 것을 깨달았다. 왜냐하면 대부분의 사람들이 Cakchiquel어를 사용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인도인의 말을 심각하게 받아들였다. 주변의 다른 선교사들은 너무나 심각하게 받아들이지 말며, 인도인에게 스페인어를 가르치라고 충고했었다.


그러나 타운센드(Townsend)는 어리석지 않았다. 그는 결국 인도인의 도전에 부응해 1931년 Cakchiquel어 신약성경을 번역했다. 그는 계속해서 다른 부족들에 대한 꿈을 갖기 시작했으며, 여름 언어학학교(Summer Institute of Linguistics)와 현재까지 수천의 언어로 성경을 번역한 성경번역 선교회를(Wycliffe Bible Translators) 창립했다. 명백하게 성경 번역은 우리 모두를 향한 세계 복음화를 위한 명령이다. Townsend는 한 때 134,000명이 미국의 Los Angeles 체육관 모인 Billy Graham 집회에서 그에게 대규모 전도집회를 중단하고 성경번역 사역에 참여 할 것을 2시간동안 설득하기도 했었다.

Townsend의 언어적 장벽에 대한 목표는 미전도 종족의 인식에 커다란 변화를 가져왔다. 무역을 위한 언어로 기록된 성경으로는 충분하지 않았다. 모든 사람들은 자신의 모국어로 하나님의 말씀을 읽고 들을 특권을 갖고 있다. 다른 새로운 혁신은 ‘그리스도를 위한 대규모 운동은 교회가 특정한 종족 혹은 동일한 종족 안에서 세워지고 성장할 때 일어난다’고 주장했던 인도의 선교사였던 도날드 맥가브란(Donald A. McGavran)을 통해 일어났다.


잉크가 물 속에서 펴져가는 것처럼 복음은 수천의 소규모의 동일언어 사용 그룹으로 확산되어 갈 수 있다. 그러나 잉크가 다른 컵 속으로 넘어 들어 갈 수 없듯이 복음의 확산 역시 언어적, 문화적 장벽을 만난 때 멈추게 된다. 이러한 새로운 견해를 가졌던 McGavran은 자신의 선교단체 대표직을 사임하고 인도에서 제자훈련과 교회를 세우는 일에 17년을 보냈다. 오늘날 그의 사역의 열매와 운동은 많은 나라가 종족구분으로 세분화 되고, 지상 대사명이 요구하는 종족을 기준으로 짜여진 모든 사람을 제사를 만들어야 한다는 그의 원리의 지혜로웠음을 나타내 주고 있다. 그의 대표적인 저서 "하나님의 다리"(The Bridges of God, 1955, 1981)는 교회 성장운동을 만들었으며, 미전도 종족을 현대 선교학적으로 이해하는 길을 개척했다.


선교역사에서 새로운 장은 1963년 멕시코에서 열렸던 세계선교와 복음화를 위한 WCC(World Council of Churches)모임이다. 이 모임에 참석했던 각국의 대표자들은 교회가 모든 지역에 존재하는 "이 세대의 위대한 현실"을 인식했다. 그리고 1967년 90%의 북 아메리카 선교사는 교회가 이미 성숙한 나라에서 사역하고 있었다. 그리고 선교사들이 감소되기 시작했다. 또한 교회의 지도력이 선교사로부터 아직 성숙하지 못한 지역 그리스도인에게로 이양은 많은 혼란을 가져왔다. 1970년대 초 아시아, 아프리카, 남 아메리카의 지도자들은 "선교사들은 고향으로 돌아가라!"는 선교의 중단을 외쳐댔다. 비 서구지역의 어린 교회들이 자신들의 동족과 비 그리스도인에게 복음을 단순하게 전하는 것을 통해서 지상 대 사명을 단순하게 완성할 수 있었다. 많은 서구의 그리스도인은 세계 선교의 일부분은 완성되었으며, 선교사들을 불려 들여야 한다고 상상했다.


새로운 불빛이 1974년 스위스 로잔에서 있었던 세계복음화 대회(International Congress on World Evangelization)에서 나타나기 시작했다. 랄프 윈터(Ralph D. Winter)는 교회가 제한된 일부 언어 사용 민족 안에서 성장한 이래 보통의 복음전파와 교회의 성장은 교회가 없는 지역에 살고 있는 수십억의 비 그리스도인에게는 복음을 전파하지 못했다. Winter는 세계 비 그리스도인의 87%가 아직도 선교사를 필요로 하고 있다고 말했다. 왜냐하면 그들은 교회가 없는 문화속에서 살고 있기 때문이었다. 이것은 24억의 사람, 당시 세계인구의 절반이 문화적인 장벽으로 인해 교회가 없는 지역에 살고 있었던 것이었다. 일반 교회의 성장과 복음전파가 어떤 성과를 낳았던지 그것은 87%의 비 그리스도인들이 복음을 들어 보지 못했던 것이다. 다른 말로는 만약 세계의 모든 교회가 새롭게 갱신되어 같은 언어와 문화 속에 있는 사람들을 완전하게 복음화 한다 해도 비 그리스도인의 87%는 아무런 소망과 복음의 증거가 없이 남아 있게 된다는 것이었다. Winter는 가장 중요한 것은 문화를 초월해 미전도 종족에게 교회를 세우고 이것으로 복음전파의 발판을 만드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2000년까지 모든 종족에게 교회를! 모든 종족에게 복음을!(a church for every people by the year 2000)이라는 표어가 착안되었고, "선교의 중단"이 McGavran에 의해 "선교의 재현"으로 전화되었다.


현대 선교의 3가지 물결

해안선교

내륙선교

종족선교

 1792~1910

 윌리암 캐리

 침례교 선교회

 1806년 ‘헤이스택(건초더미)’     기도모임의 학생들

 젊은이들이 해외로

 1865~1980년대

 허드슨 테일러

 중국내륙 선교회, OMF

 1883년 캠브리지대학의 7명

 1886년 학생자원봉사 운동

 젊은이들이 해외로

 1934년~마태복음 24:14

 카레론 타운센드

 도날드 맥가브란

 랄프 윈터

 루이스 부시...그리고 당신

 1936년 SFMF, IVCF

 1946년 얼바나 회의

 젊은이들이 해외로

 

1974년 세계 복음화 대회 이후 세계 복음화 로쟌 운동은 운동의 성질을 분명하게 하며, 미전도종족에게 촛점을 맞추는데 약간의 시간이 소요되었다. 1989년 AD2000운동(AD2000 & Beyond Movement)은 토마스 왕(Thomas Wang)을 대표로 루이스 부시(Luis Bush)를 총무로 세운 후 2000년 말까지 모든 족속에게 복음을 전하며 교회를 세운다는 목표아래 수천의 교회들과 사역을 연결시키는 전술을 세웠다. 1996년 AD2000운동은 미전도종족 입양운동(Joshua Project 2000)본부를 발족시켜 일만명 이상의 인구에 5%미만의 그리스도인이 있는 1,739개 미전도 종족(현재는 1,500종족)의 입양 운동을 전개했다. 물론 일만명 이만의 종족의 수는 훨씬 많아 아마도 12,000여 종족에 달할 것이다. 그러나 미전도 종족을 향한 복음전파의 진행이 놀랄만하게 나타나고 있다. 패트릭 죤스톤(Patrick Johnstone, WEC 선교사, Operation World 편집자)의하면 13,000여 주요 종족중 이미 12,000 종족에게 복음이 전파되었다.

예수님께서 말씀하셨던 말세에 대한 분명한 증거는 온 세상의 모든 언어종족 안에 하나님의 왕국에 대한 복음이 전해지는 것이다(마태복음 24장14절). 세계 주요 종족에게 복음이 전해진 2000년 후 우리 세대에 예수님의 지상명령을 성취하는 것이 정말로 실현 가능한 일로 나타나고 있다. 그러나 쉬운 것은 아니다. 커다란 도전이 우리 앞에 있다. 수백의 커다란 종족들이 복음은 서구의 종교라는 이유로 거부하고 있는 힌두교, 무슬림, 불교 문화권에 있다. 이 마지막 도전은 성령의 강력한 역사와 이전의 선교사들과 선교운동을 통해 얻을 수 있는 원리를 적용한 전술 등이 요구되고 있다.

1. 사람들의 치료. 복음은 치료와 사람들 사이의 화해와 평화의 능력이다. 1세기 유대와 사마리아의 제한을 깨뜨렸던 동일한 능력이 오늘날 세계의 깨지고 서로 싸우는 이 시대를 치료할 수 있다. 그러나 반드시 예수님의 회개, 용서, 평화를 향한 외침과 함께 우리 자신의 연합을 나타내며 보존해야 한다.

2. 복음과 문화. 복음은 어떤 문화 속에서도 뿌리를 내리며 번영해 나갈 수 있다. 복음전도, 교회 개척, 공동체의 변화는 사람들의 언어, 사회 그리고 문화적인 환경에 상황화 될 때 가장 큰 영향력을 나타낸다. 그리고 하나님은 모든 사람이 자신들의 언어로 복음을 들을 기회를 갖게 되길 원하시며 자신의 문화 속에서 복음과 함께 살아가는 것을 원하신다. 그러나 우리는, 전략적으로 그리고 특별하게 미전도 종족을 향한 선교의 노력을 집중시켜야 하며, 이러한 실천을 위한 방법을 찾으며, 선교사 혹은 파송교회의 문화로 전하지 않고 예수 그리스도를 자신의 문화 속에서 따라야 하며, 혼합주의를 향한 경고, 격려, 상황화를 위한 새롭고 창조적인 노력의 추가, 교회생활, 미전도 종족의 새롭게 훈련된 제자들 특별히 무슬림, 힌두교, 불교 공동체 속의 신학에 직면해야 한다.

3. 성령강림 역시 교회를 새롭게 하며, 아버지가 아들을 세상에 보내셨듯이 교회를 세상에 보낸다. 그러나 세상에서 하나님의 선교를 원하는 우리는 새로운 갱신과 성령의 역사를 위해 우리의 삶, 교회, 훈련과 선교 단체를 개방하듯이 개혁과 부흥을 위해 애써야 한다.

4. 교회와 선교. 지역 교회와 선교단체는 하나님의 교회에서 동등한 협력자이며, 모든 사람을 위한 하나님의 선교를 위해 공동적으로 책임을 지니고 있는 기관이다. 그러나 미전도 종족 속에서 교회가 성장하며 성숙할 때 자국의 전도 종족을 위한 자발적인 선교전략을 갖도록 격려해야 한다.

5. 외면의 힘. 하나님의 선교는 인간이 한계를 초월한다. 선교사가 인간으로 일할 때 한 남자와 여자의 자유로운 창의력을 통해 자주 놀라운 일을 수행해 낸다. 그러나 우리는 반드시 제도화된 교회의 작은 사람들(평범한 사람)을 속에서 하나님께서 무엇을 역사하시는지 관찰하며 주지해야 한다.

(from : http://www.ad2000.org/celerbr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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